넷플릭스에는 매주 화제작이 쏟아지지만, 알고 보면 알고리즘 뒤편에 조용히 숨어 있는 웰메이드 작품들도 적지 않습니다. 공개 당시 큰 홍보 없이 공개됐거나, 장르적 특성 때문에 대중적인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완성도와 여운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은 작품들이죠.
이번 리스트에서는 무비데이가 그런 ‘숨은 보석’ 같은 넷플릭스 작품들을 하나씩 꺼내 소개하려 합니다. 단단한 서사, 인상적인 연출, 그리고 보고 난 뒤 오래 남는 감정까지. 지금 다시 발견해도 전혀 늦지 않은 작품들만을 기준으로 선별했습니다.
“이런 작품이 있었어?”라는 반응이 나올 만큼 의외의 선택도 있고, 개봉 당시에는 지나쳤지만 지금 보면 더 빛나는 작품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말에 무엇을 볼지 고민하고 있다면, 혹은 넷플릭스에서 새로운 취향을 발견하고 싶다면 이번 리스트가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거예요.
스티브
팀 밀란츠 감독 · 킬리언 머피 출연
문제아 소년들에게 사회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기회를 제공하는 교정학교를 이끄는 교장 ‘스티브’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규율과 원칙을 중시하는 ‘스티브’는 폭력과 상처를 안고 있는 아이들을 통제하는 동시에, 그 이면에 숨겨진 사연과 가능성을 외면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 그는 교육과 처벌의 경계, 어른의 책임과 신념에 대해 끊임없이 시험받는다.
킬리언 머피는 절제된 감정 연기로 인물의 복합적인 내면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이처럼 사소한 것들’, ‘피키 블라인더스 시즌 3’를 연출한 팀 밀란츠 감독은 차분하면서도 긴장감 있는 연출로 묵직한 드라마를 완성한다.
러시아 인형처럼
레슬리 헤드랜드 외 감독 · 나타샤 리온 출연
생일 파티를 기점으로 반복되는 죽음을 겪게 된 주인공 ‘나디아’는 설명할 수 없는 타임 루프에 갇히며 같은 하루를 끝없이 살아가게 된다. 매번 다른 방식의 죽음을 경험한 뒤 다시 파티 현장으로 돌아오는 이 기이한 상황 속에서, ‘나디아’는 특유의 냉소적인 유머와 솔직한 태도로 현실을 받아들이며 탈출의 실마리를 찾기 시작한다.
이 시리즈는 타임 루프라는 익숙한 설정을 활용하면서도 단순한 장르적 재미를 넘어, 반복되는 죽음을 통해 삶의 선택과 후회, 관계의 의미를 되짚는다. 가벼운 코미디처럼 시작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주인공이 마주하는 내면의 상처와 성장 서사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며, 웃음 뒤에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웰메이드 코미디 시리즈다.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
에바 두버네이 감독 · 자럴 제롬 출연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4부작 미니 시리즈 ‘그들이 우리를 바라볼 때’는 1989년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발생한 여성 습격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다. 충분한 증거 없이 수사 당국의 강압적인 조사와 언론의 왜곡된 보도 속에서, 죄 없는 유색인종 소년 다섯 명은 용의자로 지목되고 순식간에 사회적 낙인의 대상이 된다.
시리즈는 사건 당시의 수사 과정부터 잘못된 판결, 그리고 그 이후 수십 년에 걸친 삶의 붕괴와 회복을 차분히 따라가며, 사법 시스템과 인종 편견이 개인에게 남긴 깊은 상처를 조명한다. 단순한 사건 재현을 넘어, 권력과 언론, 사회가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고 소비하는지를 묵직하게 질문하는 작품이다.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
마이클 리안다 감독 · 마야 루돌프, 올리비아 콜먼 출연
로봇들이 인간을 대신해 세상을 정복한 근미래를 배경으로, 어쩌다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되어버린 한 가족의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각자 뚜렷한 개성과 갈등을 지닌 가족은 평범한 로드 트립 도중 갑작스럽게 시작된 로봇 반란에 휘말리며, 생존과 인류의 미래를 동시에 책임지게 된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가족 간의 불화와 이해, 성장의 과정이 유머와 액션을 통해 빠르게 전개된다.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 특유의 과감한 색감과 역동적인 작화는 이야기의 에너지를 극대화하며, 웃음 뒤에 가족의 의미와 연결에 대한 메시지를 분명하게 남기는 애니메이션 영화다.
도쿄 사기꾼들
오네 히토시 감독 · 아야노 고 출연
땅을 가로채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부동산 사기꾼들의 세계를 그린 7부작 시리즈 ‘도쿄 사기꾼들’은 2017년 도쿄에서 실제로 발생한 대형 부동산 사기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겉으로는 합법과 계약의 언어로 포장된 거래 뒤에서, 사기꾼들은 허점을 파고들며 조직적으로 땅의 소유권을 조작하고 거대한 돈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시리즈는 치밀하게 설계된 사기 과정과 인물 간의 심리전을 중심으로 전개되며, 탐욕과 욕망이 교차하는 도시 도쿄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낸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현실감 있는 디테일과 냉정한 연출이 긴장감을 높이며, 범죄의 구조와 그 이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범죄 드라마다.
힐 하우스의 유령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 · 칼라 구기노 출연
유령 들린 저택 ‘힐 하우스’에서 살았던 한 가족의 기억을 중심으로, 20년 후 현재에서 다시 시작되는 초자연적 현상과 과거의 비극을 그린 10부작 시리즈 <힐 하우스의 유령>이다. 어린 시절 저택에서 겪은 기이한 경험과 설명되지 않은 사건들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가족 구성원 각자의 삶에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시리즈는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저택에 숨겨진 진실과 가족 내부의 균열을 서서히 드러낸다. 공포 장르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상실과 트라우마,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붕괴와 회복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영화에 가까운 연출과 밀도 높은 서사로 강한 인상을 남기는 작품이다.
그리고 베를린에서
마이크 플래너건 감독 · 칼라 구기노 출연
뉴욕의 유대교 공동체에서 자라며 엄격한 규율과 관습 속에서 살아온 ‘에스티’가 답답한 결혼생활과 통제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유의 도시 베를린으로 향하는 이야기를 그린 4부작 미니 시리즈다. 공동체가 요구하는 역할과 기대에 순응해왔던 그는 낯선 도시에서 처음으로 스스로의 욕망과 선택을 마주하게 된다.
시리즈는 탈출 이후의 해방감뿐 아니라, 전통과 신앙, 가족의 압박이 개인에게 남긴 흔적을 섬세하게 따라간다. 한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조용하지만 단단한 시선으로 담아내며, 자유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하는 작품이다.